메뉴 건너뛰기

유관호(柳寬浩)

YooGwanHo

미디어아트 판화 색체연구 컴퓨터 페인팅 음악(테너)

유관호 비평(Critic)

“음악의 시각화”

-유관호의 판화전에 부쳐-


 판화는 프린트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므로 회소 가치가 적고 예술로서의 향기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특히 우리의 경우 유화만을 으뜸으로 여겨온 왜곡된 문화적 관습에 기인한다.
최근에 와서야 판화가 보급되고 판화에 대한 인식도 차츰 달라지면서 판화를 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판화도 드로잉이나 유화와 마찬가지로 미술의 여러 표현수단 중의 하나이다.
다른 점은 프린트 라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제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나름의 재료와 기술이 요구되고 또 독특한 표현성과 효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서구의 미술가들이 판화에 손을 대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밖에도 판화는 같은 그림을 여러장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대중적이고 미술의 수용과 소유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강력한 예술형태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판화는 장구한 시일에 걸쳐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목판화나 동판화 외에도 오늘날에는 실크 스크린(세리그라피)에 의한 제작까지 등장하고 있다.실크 스크린(세리그라피)은 우리의 경우 대개 그라픽 디자이너가 주로 애용하고 있으나 이를 정신을 표현하는 한 형식으로 그리고 동판화나 석판화의 예술적 경지까지 높여가며 작업을 학 있는 사람이 유관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유관호는 이 작업에서는 아마 한국 유일의 작가가 아닐까 한다.


 유관호는 그라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판화의 여러 형식과 기법, 인쇄술까지 두루 마스터하고 있다.
그가 실크 스크린(세리크라피)에 전념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지만 정작 그는 그런 직업적인 관심에서 보다는 자신의 정신과 기질 혹은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관호는 성격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은 섬세하고 치밀하며 비타협적인, 그리하여 한치의 오차도 용납치 않는 매서운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는 적당히 얼버무리는 그림 특히 추상화에서의 애매한 표현을 예리하게 간파해내는가 하면 감각주의로 흐르는 작가정신의 빈곤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의 이같은 자존심과 정신이 냉엄하고 단호하고 명쾌한 화면으로 나타난다. 냉엄하고 단호하고 혹은 명쾌한 화면은 직접적으로는 그가 창안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붓이나 펜같은 도구로 선을 그리고 면을 칠하고 하지 않고 필름을 면도칼로 단숨에 긋고 자르는 독특한 벙법으로 판을 만들어 스크린 인쇄를 한다. 날카롭고 빠르고 경쾌한 느낌은 바로 이 방법에 의한 건인바 그것은 치밀하고 단호한 정신과 능숙한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유관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때 독창회까지 가졌을 만큼 풍부하고 힘찬 목소리와 완숙한 창법을 구사하는 테너가수이다.
그는 언제나 오페라 아리아나 고전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할 뿐 아니라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고 음악을 시각화 하는데 정력을 쏟는다.
그는 음악을 시각화할 수 있으며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을 굳게 믿고 있다. 음악을 설명(일러스트레이션)이나 분위기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음악의 멜로디나 화음 혹은 대위법 같은 것을 직접 눈으로 듣게하는 것이다.
엉뚱하다면 엉뚱한 이런 발상과 체험 그리고 그것을 서슴없이 실현해 나감으로써 아주 독특하고 흥미있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악은 정서적이고 디자인은 논리적이니까 서로 모순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엄밀한 뜻에서 음악이야말로 수학적 법칙과 정서의 통일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체험하기 때문에 음악에 접근하고 음악의 시각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전은 그가 1982년 뉴욕전을 가진지 6년만에 갖는 전시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업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정적이고 서정적이며 장식적인 것 대신에 날카로운 선, 충실한 형태, 명쾌한 색면대비, 다이나미즘 등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6년전 때의 작품에서는 일러스트레이션적인 요소가 지배하고 있었던데 비해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와 디자인적인 감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다 정제된 추상의 세계, 순수한 음악의 회화화로 심화되어 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고달픈 작업과 씨름해온 결과일 것이다. 높고 빠른 현악음, 돌연하고 날카로운 금속악기 소리, 여러 가지 악기의 밝고 힘찬 화음, 유머리스한 음향, 빠르고 가파르게 흐르는 첼로소리 등등을 날카로운 선과 형태의 운동, 색면대비를 통해 음감없이 그려내었다. 이들 그림 하나하나를 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정말 눈으로 음악을 듣는 착각에 빠진다. 한가지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전시된 작품이 모두 빠르고 힘차고, 날카롭고 다이나믹하다는 것이다.


 유관호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작가답게 변화에 민감한 도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감수성이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것을 향해 부단히 작용하고 있다. 그것이 이 화가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우리는 재빠르게 움직이고 약동하는, 늘 밝고 건강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이번 전시작품은 폭이 2미터나 되는 초대형의 것도 여러점 있다. 기존 판화의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고 최대한으로 제작한 것도 유관호 답다. 아파트의 좁은 벽면 대신 대형 건물의 ㄴ넓은 공간에나 걸릴 그의 판화 그 공간을 한층 생기있고 밝게 울릴 수 있음을 삼삼해 보는 것으로도 즐겁다.


- 미술평론가 김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