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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호(柳寬浩)

YooGwanHo

미디어아트 판화 색체연구 컴퓨터 페인팅 음악(테너)

유관호 비평(Critic)

유관호의 디지털 이미지 : 새로운 터치와 새로운 빛의 조형세계
김홍희/미술가가

전자산업의 발달은 텔레비전, 비디오와 함께 컴퓨터를 생활화시키고 그것을 활용하는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
특정 현상에 대한 정확하고 이성적인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이 예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마련한다면,
자연과학을 산업적으로 적용시키는 기술은 예술에 대한 실제적 역량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과학은 그 자체의 목적에 부합하는 미학을 동시적으로 표출하고, 기술은 예술적 창조과정으로 변형되어 그러한 미학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안경, 대포등을 발명한 르네상스의 과학적 탐구정신이 원근법 기술을 창안하고 그것을 그림에 적용시킴으로써 미술사에 획을 긋는 회화적 혁명을 일으켰듯이, 전자매체의 보급과 발전은 새로운 ‘미디어 예술’을 수립함으로써 또하나의 예술직 혁명을 초래하였다. 미디어 예술은 소통의 도구 미디어에 대한 통찰인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이다. 그것은 또한 예술 개념 자체에 대한 회의인 동시에 기존 예술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비디오 예술은 전자매체가 제시하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면서. 텔레비전의 송신상의 일반성과 계급 구조적 방송 체제에 대항하는 ‘대용TV’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용TV로서의 비디오 예술은 또한 전통적 예술 혹은 심각한 고급 예술에 대항하는 ‘대용예술’로서도 상정되는 것이다. 미디어 예술의 의미는 이렇게 매체로 매체를 치유하고, 예술로 예술을 치유하는 동종요법적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컴퓨터 아트 역시 컴퓨터를 사용하여 컴퓨터의 억압과 예술적 억압으로부터 동시에 우리를 구출하는 동종요법적 대용 예술인 것이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그 보급과 발전의 과정에서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의 전자 예술을 구축하였듯이, 컴퓨터의 발명과 보급은 컴퓨터 아트라는 또하나의 전자예술을 수립하였다. 다같은 전자예술이면서 비디오 예술과 컴퓨터 예술은 각각의 매체적 특성으로 서로 다른 발전의 양상을 보인다. 비디오의 매체적 속성이 삶의 예술을 추구하는 공연 예술가, 환경 예술가, 신체 예술가, 생태 예술가들의 예술적 이상에 부합되어 이들에 의한 비디오 아트가 내용 미학에 입각한 심각한 예술 또는 순수 미술로 인정받고 있는 반면에,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는 컴퓨터 아트는 실용적 목적을 위한 응용 미술 또는 내용보다는 형식 미학에 입각한 장식 미술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수법으로 무궁무진한 효과를 창출하는 컴퓨터 그래픽이 개발되어 그래픽 아티스트들의 상상력과 청조력을 부채질하고 컴퓨터 그래픽 아트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최신의 컴퓨터 기술인‘페인트 박스’를 이용하여 새로운 컴퓨터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는 중견의 그래픽 디자이너 유관호씨의 이번 전시는 세리그래피등 판화적 수법으로 조형의 세계를 구축하여 왔던 전자시대 이전의 그의 예술 세계로부터의 별별을 뜻하는 동시에, 컴퓨터 예술과 디자인 예술 모두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뜻깊은 전시회라 하겠다.

디자인과 예술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자유’, ‘낭만’ 같은 말 만큼이나 애매하고 그 내용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리고 시각의 변화에 따라 디자인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우선 무엇을 그리거나 구성하는 것을 뜻하며, 그냥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고안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실제로 빅토리아시대에는 순진한 아가씨에게 음심을 품는다던가, 응큼한 발상으로 획책하는 것을 디자인한다라는 말로 표현했었다. 그러나 제작 행위건 창작 행위건 모두 고안과 계획이라는 준비과정을 밟는다. 제작과 창조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는 오늘날에도 고안이 필요한 많은 분야가 디자인을 요구하고 있어 디자인에 대한 혼선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산업 디자인, 공업디자인, 실내 디자인, 장신구 디자인, 의상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은 어떠한 목적에 쓰여지기 위한, 제작을 위한 고안이라는 의미에서는 응용 미술이지만, 고안 자체는 하나의 창작행위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실용적인 목적과 상관없이 선과 면과 형태로 조형세계를 디자인하는 장식 미술 경우는 추상 회화의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 엘 리시츠키의 추상화는 비재현적 아방가르드 회화인 동시에 추상적 디자인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실제로 그의 추상은 미래의 그래픽 다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기쳤다. 러시아 구성주의와 마찬가지로 창작과 제작을 구분하지 않았던 ‘바우하우스’나 ‘데 스테일’은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 예술과 기술, 나아가 예술과 생활의 통합을 시도한 전위적 응용미술 운동이었다. 그밖에도 표현주의와 독일 장식 미술 전통을 접목한 귀스타브 클림트의 회화나, 그림을 ‘선과 색의 리드미칼한 조화’로 여기는 마티스의 화면에서도 순수 미술과 장식 미술의 공존을 볼 수 있다.
순수미술을 옹호하고 매체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결벽성이 응용 미술을 미술사의 영역 밖으로 추방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주의와 다원주의는 응용 미술과 순수 미술, 장식 미술과 고급미술의 경계를 붕괴시킨다. 용도를 배제한 도자기 예술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섬유예술은 이제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구분은 단지 관습적으로만 가능할 뿐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에서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뿐 아니라 과학 기술자와의 구별마저 흐려진다. 단지 캔버스, 종이, 붓, 물감등 재래적 문방용품이나 화구 대신 브라운관, 비디오 팔레트, 라이트 펜, 키보드, 조이 스틱같은 ‘스케치 패드 시스템’을 사용하여 그들의 창조의지를 표현할 뿐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유관호의 조형 세계
유관호씨는 ‘페인트 박스’가 제공하는 컴퓨터의 특성을 간파하여 새로운 터치와 새로운 빛의 조형 세계를 창출한다. 전통적 수법의 붓질로는 불가능한 속도감과 획의 다양함으로 추상표현주의를 만들고,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병치 또는 중첩으로 초현실주의적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물감을 잔뜩 실은 달필의 브러시 스트로그, 델리케이트한 선묘, 뭉게기, 번지기, 점묘등 각종의 회화적 수법이 총망라된 듯한 새로운 터치의 화면은 디지털 이미지 특유의 계산과 변형의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색상에서도 천연적 안ㄹ 도는 화학적 물감이 낼 수 없는 전자적 색채가 새로운 감흥을 자아낸다. 전자적 색체는 빛에 의한 색이기 때문에 전자 미술을 빛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다. 빛의 예술은 이미 전자 시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최초의 빛의 예술이었던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 글래스’는 기적의 빛을 행사하였고, 바로크 미술은 연극적인 조명적 빛을 창출하였다. 빛에 의한 색의 시각적 인상을 화면에 옮긴 인상주의 회화 역시 빛의 예술이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와 컴퓨터 아트는 천연의 태양 빛도 아니고, 회화적 빛도 아닌 전자적 빛에 의한 새로운 발광 예술인 것이다. 전자적 광채의 영상을 스크린에 보이는 비디오 아트를 전자빛의 예술이라 한다면, 전자 영상을 프린트로 출력하는 컴퓨터 아트는 전자색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빛을 동결하여 빛을 가시화 혹은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빛이 색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색으로 화한 전자 빛의 색상은 사이키델릭한 전자 음악의 현란함을 보유한다. 유관호씨의 과거 세리그래피가 고전 음악의 우아한 하모니를 창출했다면, 지금의 컴퓨터 이미지들은 전자음악의 환각적 효과를 시각화하고 있는 듯하다.

유관호씨의 작품들의 통해 알 수 있듯이, 컴퓨터 아트는 같은 전자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아트와는 전혀 다른 감수성과 특성을 보인다. 비디오 아트가 가시적 대상을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데에 비해, 컴퓨터 아트는 기계적으로 순수한 전자 영상을 창조한다. 비디오 아트가 재현 예술이라면 컴퓨터 아트는 비재현적 예술인 것이다. 물론 비디오와 컴퓨터는 가자의 기능을 공유함으로써 그 표현 영역을 넓히고 양식적 특성을 교환하기도 한다. 비디오 아트가 컴퓨터로 작동되는 비디오 합성기를 이용하여 촬영된 이미지를 왜곡, 중첩, 반복 시켜 비자연적 형상을 만들거나 순수한 컴퓨터 추상패턴과 합성하여 추상적 비디오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역으로 컴퓨터 아트는 추상적 창조 과저에 비디오 촬영 이미지나 사진 이미지를 삽입함으로써 재현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계적 과정에서 자연적 대상과 범신론적 관계를 형성하는 비디오를 자연주의적이라고 한다면, 자연과 결별하고 순전히 인공두뇌와 대화하는 컴퓨터는 비자연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비디오가 존재하는 실상을 다룬다면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을 창출한다, 가상을 창출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창조과정은 극단적인 기계적 과정이면서도 인간과의 상통을 전제로 한다. 매체와 창조자의 긴밀한 대화 속에서만이 가상의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비디오 매체와는 다르게 컴퓨터는 입력과 출력이라는 완벽한 상호 소통적 쌍방 구조를 갖는다. 매체는 정보 데이터를 받아 그것에 처방된 처리과정을 거쳐 그 결과를 다시 수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 이와같이 사용자와 매체의 상호적 매카니즘으로 컴퓨터는 인간ㅇ과 상동상사의 관계를 이루고, 그 속에서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학, 생물, 물리, 심리, 기술의 복합 학문인 인공두뇌학은 지식의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인공 두뇌마저 합일화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대면하는 컴퓨터 아티스트는 기계적 도움으로 비현실적 현실을 창조하고, 그럼으로써 현실을 초월한다. 현실을 초월하는 가상적 현실을 경험함으로써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를 리얼하게 느끼고 오히려 현실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컴퓨터 예술가들은 또한 컴퓨터의 예술적 사용으로 예술의 문제를 해결한다. 자율적 예술과 모더니즘을 극복하고 매체와의 상호 소통뿐 아니라 순수 미술과 응용미술의 경계를 흐리는 다차원의 소통을 이룩함으로써 컴퓨터 아트는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예술적 사용은 예술적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정치, 군사, 종교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는 컴퓨터의 횡포를 막고, 컴퓨터에 의한 인본주의 세계를 구축한다. 컴퓨터 예술가는 결국 예술강인 동시에 유토피아적 시각을 가진 공상가요, 정치가요, 인문주의자인 것이다.